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온갖 소문의 진원지로 꼽히는 사설정보지 ‘찌라시’를 소재로 한다. 정치·경제 현안뿐 아니라 연예인들의 사생활까지 훔쳐보는 찌라시 때문에 희생된 여배우를 내세워 소문의 생성·유통·확산을 그려낸다. 배우 정진영(50)이 맡은 역할은 찌라시 유통업자다. 찌라시의 핵심에 근접해 있는 그는 목숨 걸고 소문의 근원을 좇는 김강우가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찌라시로 먹고 살지만 찌라시의 문제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과 소문의 시작과 확산, 그리고 실체를 좇았다.
- 영화에선 찌라시 전문가지만 찌라시를 실제 본 건 영화 출연 후라고 들었다.
“아예 몰랐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더 재밌게 봤다. 무서운 일이 우습게 벌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 세상엔 찌라시로 대표되는, 수많은 소문이 떠돈다. 소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고 보나.
“소문은 입에서 나와서 귀로 간다(웃음). 소문의 시작은 재미다.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근원적 목마름이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보는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을 해코지 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재미로 시작된 소문인데,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나쁜 사람들은 가짜 소문까지 만들어낸다.”
- 영화에서도 찌라시를 악용하는 세력 때문에 배우가 목숨을 끊는다.
“소문의 본질은 재미일 텐데 재미조차 악용하는 욕심쟁이들이 있는 거다. 힘을 가진 자들이 그런 일을 서슴지 않고 하니 세상이 무서워진다. 자고로 예전부터 소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건 힘 있는 사람들의 짓이었다. 영화에서도 기업의 이익, 반대 정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용한다.”
- 찌라시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기업인. 무분별하게 유통하는 세력, 여과 없이 믿어버리는 대중 같은 여러 주범이 있다. 누가 가장 문제일까.
“주범, 종범이 없다. 이건 분위기의 문제다. 지금 이 시대만이 아니라 태고적부터 존재했다. ‘설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 놓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서동요가 그런 거 아니겠나. 소문의 범위를 넓히자면, 예전 건국신화도 다 소문이다. 임금님은 천신의 아들이야, 알에서 나왔어란 소문이 구전되다 신화로 굳혀졌다. 현 시대에 소문의 문제가 커진 건 장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까지 나왔으니 가볍게 재미로 여기고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헛소문에 시달리는 연예인은 더 심하게 상처를 받게 된다. 재미는 재미로 끝나야 하는데….”
- 매체가 많아지면 정보의 평등화가 이뤄진다는데, 오히려 통제가 쉬워졌다.
“커뮤니케이션 장치들이 무수히 늘어났는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되레 소문은 더 단순해졌다. 누군가 지배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정부·기업비리 폭로하는 위키리스크의 줄리안 어샌지나 스노든 같은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정보를 독점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돼가고 있다.”
- 이유는 뭘까.
“소문의 유통이 빨라지면서 진실 여부는 가리지 않게 된 거다. 일단 전달하고 보는 거지. 전달하면 그건 진짜가 돼버린다. 영화에도 ‘비밀이 진실을 잃으면 찌라시가 된다’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오지 않나.”
- 자정 작용 없이 거짓 정보가 떠도는 현실은 개선 여지가 없는 걸까.
“그래서 일부는 스마트폰을 ‘뽀개지’ 않는가(웃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싸우는 게 흥미롭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하고, 대자보를 쓴다. 무식한 대항 방식이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는 거다. 고도화된 이 시대에 조그만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거대 담론보다 작은 공동체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없으니 가까운 데서 방법을 찾아보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