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 어떻게들 봤나요?
난 팝콘이나 먹으면서 즐기기엔 다소 무거운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데.
영주:
그러면서 두 통의 팝콘을 먹어치운 건 뭐야!
희경:
그래도 재난에 휩싸인 지구에선 눈을 뗄 수가 없더군. 팝콘을 먹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어.
color=#6699cc>영주: 그렇게 먹으니 입을 다물 시간이 없겠죠 하핫
color=#006666>준호: 정말 입을 안다물더군. 쉴 새 없이 먹대. 하마터면 내 것까지 줄 뻔
했다니까.
희경: (못들은 척) 멋있었어, 그 장면들은. CG로 훌륭하게
처리를 했더군.
준호: 난 딱 기대한 만큼이던데. 롤랜드 에머리히가
전작 <인디펜던스 데이>를 살짝 베낀 것도 같고.
희경: 온
세상이 빙하기로 된다는 설정은 그럴 듯 했는데, 딱 그런 오락적인 요소만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커요.
color=#006666>준호: 전반적으로 빙하의 정적인 비주얼이 기존 블록버스터의 ‘건물 파괴씬’보다는 파괴력이 약하다는
생각.
영주: 나는 비주얼은 좋았어요. 그 묵시록적 분위기. 전지구적
재난을 앞에 두고, 온 지구가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는 걸 보여준 건 드물었잖아요. 새떼가 하늘을 뒤덮은 장면, 아주 불길한 것이
좋더군요.
준호: 우박씬과 새떼씬을 제외하면 불길한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새도 없이 본격적으로 재난이 덮쳐와 좀 허망한 느낌도 들더군요.
영주:
그 후에 본격적인 빙하기가 도래한다더니만 바로 날 개버리대. --;
color=#006666>준호: 부자가 상봉하며 지구도 감동한 모양이지;
color=#003366>희경: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도서관에서 둘이 애정행각을 벌이다니!
color=#006666>준호: 뒤로는 횃불이 이글거리고..
영주:
아하하 벽난로. 나도 그건 웃었어요.
준호: 또
아무리 오락영화라고는 하지만 문닫으면 추위가 못들어온다는 등의 어설픈 논리는 여전하더군요. 가스는 끊기지도 않고 계속
나오고;
영주: 게다가 추위라는 게 참 시시하게 느껴진 게.. 책 태우는
정도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잖아요. 그렇게 추운데 밖에서 텐트치고 자고 말이지.
준호:
그것도 영화 100도 가까이 되는 데서.
희경:
그러니까, 말도 안되는 게 몇몇 있긴 해. 무슨 책이 그렇게 오래 타냐고. 하루가 지났건만 활활 잘도
타대~
영주: 그게 양장이라... 오래 타요; 허점투성이지만, 어차피
오락물이니까 감안해서 봐야지.
준호: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어요.
제3세계의 도움을 받게 됐다고 넋두리 비슷하게 하는 건 좀 간지러웠지만 '미국 만세'에서 '미국도 반성합니다'로 바뀐 건 칭찬해 줄만 하죠.
영주: 정치감각을 나름대로 부린 것
같죠?
희경: 하긴 그 장면에선 미국 사람들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좀 들었지
준호: 미국 비판도 하나의 상업적 트렌드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주: ㅎㅎ 나름대로 균형 있다 이건데..
이것도 제스쳐의 냄새가 나고.
준호: 드라마는 어떻게
봤나요?
희경: ‘왜 영화에 또 부성애를 집어 넣었을까. 그냥 단순한
오락영화로 만들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 ‘할리우드 답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
color=#6699cc>영주: 할리우드가 언제나 그렇죠 뭐. 가족주의
color=#006666>준호: 원래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는 상투적인 수법이지, 뭐. 부성애 부분은.. 그렇다고
엄마가 그 무거운 장비 끌고 구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희경:
엄마도 병원에서 아이를 돌보지. 간지럽더군요.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주의.
color=#6699cc>영주: 부재한 가부장으로 인해 위기를 맞은 가정이 결국 돌아온 가부장으로 인해 제자리를 찾는다는
내용. 가족이 완성되는 순간 지구도 구원을 받죠.
희경: 그런 건 이제 좀 식상한데, 다른 걸 가지고 했으면
좋으련만. 그놈의 가족이 뭔지.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까지 꼭 갔어야 했나. 울트라 캡쑝 파워도 아니고
color=#6699cc>영주: 마지막에 아들이 데니스 퀘이드를 보고 '우리 아버지야...'라고 말할 때 소름이
오소소~
희경: 그래도 가족주의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하긴
위험한 상황에선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 역시 내 피붙이 밖엔 없지! 그래서 가족애를 넣는 건가봐.
color=#6699cc>영주: 그래도 드라마에 힘을 쓴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이런 영화에서 드라마에 너무 진뺄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기대하는 건 재난 그 자체니까
준호: 더 이상의
재난이 있을까요? 초대형 돌연변이 괴물, 혜성 충돌, 외계인 침입, 빙하기 도래 같은 범지구적인 재난요.
color=#6699cc>영주: 사실 <아마겟돈>이나 <단테스 피크> 같은 영화들은 그들만의
재난이었잖아요. 하긴 <투모로우>도, 멕시코 가면 산다며! 남반구로 이주하면 끝이더만;
color=#006666>준호: 북반구에만 한정된 재난이었죠. 오히려 혜성 충돌이나 외계인 침입이 더 범지구적일
듯.
희경: 그건 너무 많이 나와서 이제 할 말도 없을 것
같아
준호: 그런 면에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코어>라는
영화 기대했었는데 별 주목도 못받대. 나름 신선했었는데.
영주: 음.
맞다. 핵이 멈췄나 뭐 그거였지?
희경: 재난영화는 원래 별 호응을
못얻어. 공감이 안되잖아. 코 앞에 안 닥친 일이라.
영주: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얻어먹은 욕을 이번 영화에서 좀 만회해보려 한 것 같은데..
color=#006666>준호: 너무 그 반대로 임하려 했던 게 무리수라면 무리수일 듯.
color=#6699cc>영주: 그나저나 이만큼 인간이 재난에 소극적으로 나온 재난영화도 드문 것 같아요. 다들 액션스타가
되던지, 그게 아니라면 고군분투라도 하는데,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더군요.
준호: 속수무책인 상황이었으니까.
color=#003366>희경: 핵폭탄 터뜨려야한다는 말 안나오니 다행이더만.
color=#006666>준호: 난 사실 나올 줄 알았어요. 어디 시베리아쯤에서 버섯구름 하나 피워서 대기에 구멍하나 내면
태양열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영주: 나도
사실. 하핫. 꼭 미 국방부애들이 모여서 사건 다 해결하잖아요. 이번엔 일기예보요원들이 대활약을..
color=#003366>희경: 그러기엔 현 상황이 너무 민감했던게야! 미국영화에서 또 폭탄 터뜨리면 난리 나겠지, 안그래도
매일 폭탄 터지는 상황에서.
준호: 기상학자 한 명의 주장에 북반구가
들썩들썩. 이럴 때 이라크 기상학자가 등장해서 동서화합의 장을 이뤘으면 칸느 수상도 거론됐을 터인데!
color=#6699cc>영주: 아하하 이라크에 우박 떨어지는 설정 없는 게 다행인 듯 ^^ 여튼 롤랜드 에머리히는
블록버스터를 어떻게 다루는 지 대충 감이 있는 듯.
준호: 그렇죠.
언제나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한계긴 하지만. 마무리 할까요?
영주:
평범한 여름용 블록버스터. 그러나 영화 전반을 둘러싸고 있는 묘하게 무기력하고 불길한 기운들은 마음에 들었음.
희경: 피부에 와 닿은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 진중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것이 블록버스터'란 말은 무색하지 않으니 한번쯤 봐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color=#006666>준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종교'영화였던 것처럼 <투모로우>는
'환경'영화에요. 아무튼 스펙타클의 규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에머리히 작품이니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면 그만큼의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