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연애의 목적’은 연애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로맨스 판타지를 거두어내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달착지근한 수식어를 넣은 연애담이 아니라,
마치 심각한 보고서의 제목처럼 ‘연애’라는 질풍노도 감정에 ‘목적’이란 이성적 단어를 붙이다니…. 그러면서 궁금해진다. 연애를 하려는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그렇다면 상대는 어땠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예시하면서 관객에게 연애의 목적을 같이 풀자고
꼬드긴다.
최근 나온 일련의 연애담 영화들―속빈 강정 같은 할리우드판 ‘데이트 코치 히치’에서 프랑스식 심리분석판 ‘권태’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에
놓고 보면, ‘연애의 목적’은 양성용 심리와 행태 분석을 일상적 설정에서 풀어가는 실용적 경험론의 희화화판이다.
아마도 연애의 목적을 다양하고 즐거운 섹스하기쯤으로 여기는 유림(박해일)이란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매력이다. 결혼까지 내정한 여자친구가 있건만 그녀와 별 자극이 없어진 유림은 ‘안 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자를 사귀는
태도로, 교생실습차 자기 밑에 들어온 한 살 많은 홍(강혜정)에게 끌린다. 처음엔 그의 연애걸기를 거절하던 홍은 갈수록 내숭의 껍질을 벗고
유림과 연애를 건다. 심지어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그래서 전반부는 단연코 여자를 갖고 노는 연애선수인 유림의 판정승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의 비밀스러운 연애가 폭로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아마도 홍은 사랑에 관한한 믿을 남자 없다는 자신의 상처받은 경험을 유림에게
복수하듯이 돌려준다. 순간적 재미보기였던 연애가 사랑이 되려면 이제 상처를 각오하고 올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미묘한 딜레마의 지점을
물고늘어지는 점에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성찰적으로 만든다. 치고받는 우여곡절을 겪어 결국 연애의 완성을 사랑·결혼이라는 관습적
해피엔딩으로 끌고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의 꾸밈없는 직설적 연기와 군더더기 없이 연출해나간 한재림 감독의 공로는 있지만, 학교라는 설정에서 학생들과 교실
장면의 일상이 제대로 안 살아난 것은 결정적으로 2% 부족함을 드러낸 대목이다. (현실에서 떠 있는 한국영화, 그들만의 세상병!)
모든 것을 떠나 이 영화는 이렇듯 두 주인공의 관계 양상에 집중한다. 결국 연애란 서로 끌려서 즐겁자고 하지만, 상대의 내면에 접속할수록
상처투성이가 될 확률이 높은 엄청난 감정게임이기도 하다는 연애의 부조리한 목적성이 떠오른다. 그것은 양성의 심리, 특히 여성의 심리를 응시하는
후반부의 반전에서 살아나는데, 그건 전적으로 맛깔스럽고 생생한 연애심리학을 써낸 시나리오 작가 고윤희의 덕이다. 혹 연애의 목적이 뭔지, 왜
연애가 잘 안 되는지 반추하고프다면 즐겁고도 아프게 무릎을 치며 볼 만한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