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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
'너나 잘 하세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의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몇몇 대사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다소곳하고 여린 이미지의 이영애의 입에서 불연듯 튀어 나오는 한마디, '너나 잘 하세요'는 너무나 냉소적이고 신랄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된 후 네티즌들은 이영애의 '너나 잘 하세요'에 대해 '신선하다', '왠지 속이 시원하다', '이영애의 의외의 모습이
충격적이다'며 호응을 보이고 있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해 복역 중일 때와는 딴판으로 변해버린 두 얼굴의 이금자. 그가 교도소 철문을 나와 내뱉는 처음 한 마디 '너나 잘
하세요'는 신랄한 쾌감을 선사하는 명대사다. 또 '천사'와 '마녀'의 두 가지 별명 만큼이나 상반된 양면을 가진 이금자의 속마음에 대해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는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너나 잘 하세요'를 비롯해 '바빴어', '친절해
보일까봐'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등이다.
언론 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은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의 상상력과 의외의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폭소가 인상적인 블랙 코미디다. 영화가
개봉되는 29일을 기해 '친절한 금자씨'의 많은 대사들이 영화팬들의 입을 타고 유행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의 시작은 이영애라는
스타의 이미지를 뒤집으며 출발하는 작품임을 선언한다.
누가 뭐래도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은 ‘친절한 영애
씨’다. 영화의 예고편에서 선보인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와 무표정은 영화보다는 이영애의 변신을 선언하는 예고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이 장면은 영화의 오프닝에 고스란히 사용됐다. 전도사가 감옥에서 막 출소한 금자를 향해 두부를 내밀자 특유의 무표정함으로 영화의 첫
대사를 터트린다.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의 시작은 이영애라는 스타의 이미지를 뒤집으며 출발하는 작품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획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언론과 관객은 이영애의 파격적인 변신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커다란 즐거움에 사로잡혔다.
이런 기획력을 만만하게 볼 일은 결코 아니다. 숱한 대중 영화에서 스타의 변신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대중영화는
대개 스타의 잘 알려진 모습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대중들의 무관심이라는 무시무시한 복수를 각오해야 하는 시도이다.
근래의 한국영화 중에 파격적인 변신으로 눈을 사로잡은 예는 <해피엔드>의 전도연, <스캔들>의 배용준,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변신도 이영애의 변신이 불러올 폭발적인 반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영애의 변신은
대중의 그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시도한 것이다. CF와 텔레비전을 통해 다져진 이영애는 ‘친절한 영애 씨’였다.
금자와 영애 사이
20세의 나이에 6살짜리 아이의 유괴 살해범이 된 금자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그녀의 범죄 행각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금자의 미모가 눈길을 끌었다. 금자의 미모를 운운하는 장면은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얼짱 강도’나 오래 전 대한항공의
폭파범으로 지목된 김현희를 떠올리게 한다. 성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금자의 현재와 과거가 설명되는 장면들은 이영애에게 부여된 스타의 이미지를
어떻게 배신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가출 후 도움을 청하기 위해 교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임신했다는 걸 알리는 여고생 금자의 목소리에는
전형적인 백치미가 묻어 있고, 출감한 후 만난 감방 동료로부터 눈 화장을 왜 벌겋게 했냐는 질문을 받고 “친절해 보일까봐”라고 답하는 현재의
금자의 모습에선 화장품 CF로 정평이 나 있는 이영애의 이미지를 희롱하는 즐거움이 터져나온다. 복수를 위해 만든 총을 두고 왜 그렇게 복잡한
손잡이 장식을 요구했냐는 물음에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 게 좋아”라고 말하는 극중 주인공 금자에게선 이영애라는 스타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려는
감독의 농담이 읽힌다. 금자의 말과 행동에는 자연스럽게 ‘영애들’이 넘쳐난다. 복고풍 패션과 선글라스 등 그녀가 착용한 액세서리는 스타의
물신화된 기호를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이 물신주의 덕분에 <친절한 금자씨>는 금자가 아니라 이영애를 보고 즐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이는 계산된 것이지만 스타의
물신화된 이미지가 ‘금자’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금자가 13년간 고통을 겪으며 복수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백 선생이
자신의 ‘딸 아이’를 유괴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참아낸 13년간 금자 씨가 보인 친절함은 백 선생을 향한 ‘복수’의 일념을 감추기 위해서였고,
자신의 딸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금자의 복수 뒤에 놓여 있는 것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모성애’다. 이는 영화 전체의
기획과 연결된다. <친절한 금자씨>가 전작들과 달리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후반부에 다른 차원의 복수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도 ‘모성애’(혹은 그것을 포함하는 가족애, 부성애, 부모애)를 통한 드라마의 얼개 덕분이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의 모성애는 미적지근하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주인공의 부성애처럼 건조한 정서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면서, 감정의 파고를 일으켜야 하는 순간에 멈칫거린다. 금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입양된
딸의 편지는 사춘기 소녀의 상투적인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고, 두 사람이 재회하는 순간 역시 감정을 건드리지 못한다. 아마도 이영애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전시한 결과 때문이리라. 이영애의 대중적 이미지 속에는 ‘모성애’라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친절한 금자씨>가
모성애와 가족애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연기와 드라마의 감정에 충실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의 호흡에 충실하기보다는 스타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것은 화려한 카메오 출연진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다. 백선생 역할을 한 최민식을 제외하고도 영화 속에는 아나운서 역할의 강혜정,
청부살인업자로 등장하는 송강호와 신하균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주연배우들이다.
하지만 각각의 역할은 전작에 출연했다는 정보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일종의 영화 보기의 즐거움에서 멈춰 선다. 화려한 스타들의 전시적인
면면은 <친절한 금자씨>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시각적 쾌락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유희의 수준으로만 보기에 애매한 고리를 걸어놓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유괴했던 아이의
환영을 보는 상황이 있다. 이는 죄인 금자가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손길을 내미는 성인이 된 원모 역할을 유지태가
연기한다. 그는 <올드보이>에서 복수의 화신이면서도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다. 왜 하고 많은 인물 중에 그를 원모의 위치에
부여한 것일까. 단순한 카미오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맡은 역할이 너무 크고,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전작 <올드보이>와의 명백한 고리를
찾기 힘들다. 이 영화의 애매모호함은 종종 이러한 방식의 유희로 발휘된다. 과도한 스타 이미지의 전시나 카메오는 결국 영화의 캐릭터를 가리기
마련이다. 백선생 역할을 맡은 최민식은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극단적인 악마를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영애의 변신이 크게 전시되다
보니 최민식의 연기나 변신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영화의 문제인가 아니면 영화를 바라보는 편중된 시선의 문제인가.
개인과 집단의 복수 사이
<친절한 금자씨>의 플롯을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금자’나 ‘백 선생’이 아니라
‘복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캐릭터에 집중했다고 보기에는 피나는 복수극을 펼쳐야 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 부족하다.
많은 의문점들이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그 대신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금자를 중심으로 한 감방에서의 13년 혹은
복수의 준비과정, 출소 후의 상황과 백 선생의 행방 찾기 그리고 폐교에서의 대반전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복수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확대하는 ‘복수를 위한’ 단계로 채워져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서명이며, 복수극의 절정이라 할 상황이 나온다. 초반을 채우는
금자의 복수는 박찬욱 영화의 기존 틀에 풍부한 스타일을 가미한 재탕에 가깝지만 클라이맥스의 반전에서 진짜 복수의 의미의 겹이 하나 둘씩
펼쳐진다. 집단이 등장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영화는 개인의 심리와 집단의 반응이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정쩡하게 넘어간다.
일반적으로 무협영화나 서부극의 복수는 최후의 1:1 대결을 통해 선과 악이 충돌하는 드라마다. 그러나 선악이 뒤섞여 있는 집단의 복수극에서는,
집단의 윤리 의식이 중요한 의제로 설정되기 마련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긴 <오리엔탈 특급살인>에서 볼 수
있듯이 집단의 원한은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상황에서 펼쳐진다. 그래야만 윤리적 갈등을 다소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는 이 과정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 백 선생을 놓고 여러 사람이 벌이는 소동극에서 집단 복수극을
향한 블랙 코미디의 농도가 더해진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폭력과 웃음을 한꺼번에 동반하는 윤리의 경계를 희롱하는
과감한 연출이며, 선과 악을 뒤섞는 지옥도의 묘사다. 말이야말로 가혹한 살해보다 끔찍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 하나로도 이 영화는 흥미롭다(물론
이러한 연출은 <쓰리, 몬스터>에서 이미 본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복수라는 모티프가 말들의 유희와 유머 속에서 가볍게 희화화되면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진다. 후반부의 반전에서 보이는 복수 모티프가 전반부에 펼쳐지고 있는 금자의 개인적인 복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설득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박찬욱의 영화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는
모두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원작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기본 골간을 유지하면서 박찬욱의 스타일을 가미할 수가 있었다. 다른
영화에서는 이야기의 부실함을 스타일로 압도하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박찬욱 감독이 친절하게
재확인시켜 주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 박찬욱 감독은 한 장면 한 장면에 세공을 들이며, 풍부한
볼거리와 물신화된 기호들을 유포하는 데 재능을 발휘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발휘되는 웃음도 잘 따져보면 한 장면에 종속된 것이지
전체적인 흐름이나 매끄러운 고리를 지닌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박찬욱 특유의 과잉 표현으로 이어진다. <친절한 금자씨>에는 많은 인물들이 지나간다. 13년간의 감옥 생활을 통해 금자는
다양한 인물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는 남파 간첩 고선숙을 비롯하여 간통범, 살해범, 은행털이범 등 다양한 유형의 캐릭터들이 널려 있다.
이들은 각각의 장면에서만 기능할 뿐 하나의 집단화된 군상으로 묶이지 않는다. 화려한 영화의 수사학과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인물들간의 관계는
닫혀있다. 이러한 폐쇄성으로 복수의 윤리성이라는 철학의 문제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을까.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특유의 과감한
표현의 재능을 증명하지만 갈등이나 윤리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을 희화화하고 전시하는 데 몰두한다. 복수의 쾌락을 줄지언정 구원의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못한다. 블랙코미디의 웃음을 준 뒤에 남는 씁쓸한 눈물을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