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멜로. 눈물 흘리는 사랑이야기에는 흔히 붙는 장르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정 받는 정통 멜로 영화는 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 멀게는 <약속>, 가깝게는 <너는 내 운명> 정도가 떠오를 뿐. 신파냐, 로맨스냐의 부담스러운 경계와 과잉이냐, 부족이냐의 압박 속에서 정통 멜로는 길을 잃고 헤메기 일쑤다. 디지털 장편영화 <나비>(2001)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던 문승욱 감독이 조재현, 김지수와 함께 한 <로망스>(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작 엘제이필름)는 바로 정통 멜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 13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언론시사회를 연 <로망스>는 운명적인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풀어놨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정직함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서 밀려난 형사 ‘형준’(조재현). 아내에게서 버림 받고 아이도 만나지 못하는 처지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삶을 포기한 채 길을 걷던 ‘윤희’(김지수)를 사고로부터 구해낸다. 권력과 권위로 뭉친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속박된 삶을 살던 윤희.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연민을 거쳐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으로 커져 간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은 그만큼 치명적인 법. 윤희의 남편이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자 형준과 윤희는 피할 수 없는 위험 속에 빠지고 만다.
첫 만남부터 예정되는 운명, 극단의 상황에 몰린 주인공, 비극이라는 사랑의 대가까지. 정통 멜로를 표방한 <로망스>는 그 제목 만큼이나 낯익은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연성을 더하고 사실감을 높이는 스토리 라인이 문승욱 감독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로망스>를 “이성적인 것들이 끼어 들 사이 없이 밀고 나가는 영화”라 잘라 말하며 “영화 분위기 자체에 젖어 들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 <로망스>의 사랑은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으며, 주인공의 대사를 대신해 이동준 음악감독의 감성적인 탱고 음악이 영화를 이끌고 있다. 문승욱 감독은 “관객이 주인공들과 함께 현실에는 없는 모험을 떠났으면 좋겠다”라며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다”라고 강조했다. 곁길로 빠지지 않고 오직 정공법으로 정통 멜로를 인정받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다.
문승욱 감독이 조재현과 김지수를 캐스팅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로망스>의 두 주인공을 표현하는데 조재현과 김지수의 이미지가 최적이라 판단했다. 문승욱 감독은 “두 배우가 원래 갖고 있던 상징들을 영화 속에서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라며 “두 사람을 만난 건 천만다행이다”라는 감사의 말까지 전했다. 강한 사랑이야기인 만큼 조재현과 김지수의 연기 또한 쉽지 않았다. 김지수는 “현실 속의 쉬운 사랑이야기가 아니기에 두 사람의 연기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했다”며 “꼭 필요한 장면 이외에는 과잉하지 않고 절제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조재현 역시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로망스>는 조재현이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시놉시스만 보고 선택한 영화. 그는 “남자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라며 “거칠고 가라앉은 내 이미지로도 멜로 영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자신의 나이가 마흔 살이라며 “멜로 영화에서 점점 30대 후반의 남자 배우가 없어지는 안타까움이 있다. <로망스>를 시작으로 배우의 역할도 더욱 다양해지길 원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로망스>, 정통 멜로의 성패는 오는 16일 개봉과 함께 결정된다.
After Screening
비루한 인생을 사는 형사와 남편의 폭력과 억압 속에 사는 부유층 여성의 로맨스. 이들의 관계는 억압과 해방감 사이를 오고 가지만 관습적인 결말로 나아가면서 예상할 만한 로맨스의 공식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운명적인 연인들의 비극적인 결말은 근래의 한국 영화에서 되풀이 되어 온 최후였고, 과감한 클로즈업을 사용한 운명의 각인도 과도한 감정의 남용으로 읽혀진다. 이상용(영화평론가)
<로망스>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린 멜로 영화다. 남편의 정치 인생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윤희(김지수)와 지나치게 강직한 탓에 조직에서 밀려난 형사 형준(조재현)이 첫 눈에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낀 후,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정통 멜로스러운 줄거리의 <로망스>. 그러나 비극으로 치닫게 하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과 지나치게 아름답게만 연출된 신, 그리고 감정이 격앙되는 장면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탱고 음악을 비롯한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음악 등이 몰입을 방해한다. 때문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연인의 아픔에 공감을 느끼는 대신, 아름다운 화면과 강렬한 탱고 음악이 더 인상에 남는다. 스토리텔링에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름다운 화면과 잘 어울리는 애절한 멜로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을 보여주는 정치인 남편을 연기한 엄효섭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형사 반장 역을 맡은 윤제문의 연기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감정의 과잉 속에서도 빛난다. 최상희 (프레시안 무비 기자)
강병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