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엔 건달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액션 신 하나 없다. 보여주는 건 오직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이다.
영화 <열혈남아>와 왕가위의 <열혈남아> 사이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당연히 관계가 있다. 영상원 출신 신인
이정범 감독은 왕가위의 <열혈남아>를 리메이크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잘 됐을까? 물론 잘 되지 않았다. 홍콩 측 제작사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이정범 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직접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전라도 건달들을 열심히 취재했고, 대사를 쓰다가 막히면 평소
워낙에 좋아하던 배우 설경구가 주인공 재문을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설경구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엄청나게 재밌게 읽었고", 재문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며 출연을 승낙했다. 건달 심재문(설경구)은 조직에 뿌리내리지 못한 일회용 칫솔 같은 존재다. 형님 민재와 작업을 했다가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그 때문에 민재도 제 눈앞에서 죽자 재문은 복수를 결심한다. 계획은 신참 건달 문치국(조한선)과 함께 민재를 죽인
대식(윤제문)의 고향 벌교에 내려가 때를 기다리는 것. 재문은 치국과 벌교의 어느 체육사를 빌리고, 대식의 어머니 점심(나문희)의 국밥집을
배회한다. 대식이 마을 체육대회에 참석하기까지 일주일간, 복수를 말리는 순박한 후배 건달 치국에게 악을 써대고 아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점심과
자꾸 마주하면서 재문의 심장은 혼란에 휩싸인다.
<열혈남아>는 분명 건달의 삶을 다루지만 그간의 충무로 건달영화들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다. 더없이 비장할 줄 알았던 재문과
치국의 벌교 생활은 한가롭기만 하다. 세상과 어울리는 대신 충돌하며 살아온 재문이 복수할 놈의 어머니와 나누게 되는 기이한 정은 외양은
투박할지라도 많은 이들이 원할 만큼 따뜻하다.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겨울 벌판의 로케이션부터 매 장면의 디테일한 연출에 이르기까지 이정범
감독은 도대체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영화를 밀고 당긴다. 썰렁한 농담은 살기로, 험악했던 공기는 해 저무는 갯벌의 스산한 바람으로 순식간에
변화한다. 재문이 대식과 어머니 점심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에서는 숨 막힐 듯한 서스펜스를 직조해낸다. 거의 모든 장면 안에 웃음과 냉소, 온정과
분노가 공존하는 <열혈남아>는 그래서 건달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는 퍽퍽한 삶을 살던 재문이 축축한 삶의 온기에
젖는 바로 그 순간 인생 막장에 당도하고 마는 과정을 그들만의 여백과 유머로 담아낸다. 영화 후반부 그토록 격렬했던 재문의 복수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발견하게 되기까지, <열혈남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배우들의 몫도 말할 수 없이 크다. 무엇이 가장
설경구다운 이미지인지를 증명한 재문 역 설경구의 ‘똘끼’어린 막장 인생 연기와 와신상담 끝에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조한선의 낯선 건달
연기, 우리 시대의 어머니 나문희의 호흡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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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나문희, 조한선의 호연이 빛나는 <열혈남아>(11월 9일 개봉)는 건달을 소재로 해
조폭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건달 이전에 인간’ 이야기를 모성애라는 그릇에 담은 영화다. 자신의 친구를 죽인 ‘그 놈’을 찾아 보성을
찾아가는 재문(설경구). 그런데 ‘그 놈’보다 ‘그 놈의 엄마’를 먼저 만나면서 재문은 복수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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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서 세상의 사소한 모든 것에 격렬히 반응하는 남자들,
열혈남아. 설경구와 조한선이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는 영화 <열혈남아>들 들고 왔다. 사진으로 이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설경구는 영화 <열혈남아>에서 비열하고 치사한 건달 심재문으로 변했다. 아니 심재문은 이제껏 봐왔던 그 설경구도 아니고 우리
영화사에서 만나왔던 그 숱한 조폭도 아니다. 심재문으로 추억될 설경구, 설경구로 환기될 심재문. 설경구는 그렇게 낯설지만 놀라운 캐릭터로 귀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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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감독의 <열혈남아>에 조형된 심재문은 우리 영화사에서 볼 수 없었던 희한하고 별난 존재다. 심재문은 아이였다가 잔혹한
건달의 눈빛을 내뿜고 사시미를 갈다가 적의 어머니에게 선의를 베푸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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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심재문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묻자 설경구는 선뜻 대답한다. "재미있는 존재지, 나도 잘 이해는 안 가, 겉으로는
‘싸움은 눈빛’이라고 소리치며 대들지만 실상 도망이나 다니는 놈이잖아. 어정쩡하고 비열하고, 치사하기도 한 녀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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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쪽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느릿하게 내뱉는 <열혈남아>의 순박한 청년 건달 치국이 있다. 그는 조한선이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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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유혹> <연리지>의 로맨틱한 터프 가이에서 환골탈태한 조한선은 "죽어보자"는 심정으로
<열혈남아>에 달려들었다. "나, 가진 것도 없고, 연기력도 없고,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시나리오 볼 줄도 모른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쉬면서 이렇게 성장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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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건달영화보다 뜨거운 인간미를 내뿜는 건달영화 <열혈남아>. 이 영화의 얼굴과 영혼, 몸이 됐던 설경구와 조한선은 그들이
보여준 연기 중 최고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당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