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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의 세 번째 영화 <그놈 목소리>는 관객에게 끝을 맡기는 영화다. 그리고 실화영화에 대한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박진표 감독이 실화를 소재로 한 세 번째 영화 <그놈 목소리>를 만들었다. 노년의 섹스를 다룬 <죽어도
좋아>,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와 시골 노총각의 통속 멜로 <너는 내 운명> 이어 이번엔 미제사건으로 남은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이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1회 방영 당시 조연출로 1991년 1월 29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일어났던 이형호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을 취재했던 박진표 감독은 <너는 내 운명>의 성공으로 이 사건을 꺼내들 수 있었다.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고, 범인이 잡히지 않고, 부모가 용서하지 않은 채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2006년 2월 이후 제작에 들어가 개봉할
때까지 <그놈 목소리>는 부모와 범인이 사투를 벌였던 44일간을 담는 영화로 찍혔다. 전국민의 애정을 받고 있는 TV 9시 뉴스 앵커
한경배(설경구)와 가정에 헌신적인 아내 오지선(김남주). 둘의 행복은 어느 날부터인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열 살짜리 아들 상우와 아이를 유괴한
그놈(강동원)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다. 그놈 목소리는 조용하고 또박또박하게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전하고, 돈을 요구하며, 부모의 심장을
움켜쥔다.
<그놈 목소리>는 결코 부모와 범인이 흥미진진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스릴러는 아니다. 하나뿐인 아이의 사라짐 이후 모든 것을 잃는
부모들이 보여주는 상실의 인간 드라마이자, 범인을 잡자고 선동하는 현상수배극이 되어 관객을 향해 울부짖는다. 노태우 정권이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 휴거 광풍, 실적 위주 검거 때문에 우왕좌왕했던 공권력의 모습은 지독한 무관심의 시대를 환기하는 르포적 감성을 통해 스크린 위에서
보여진다. 급기야 현실과 허구가 기이하게 편집된, 좀처럼 시선을 뗄 수 없는 엔딩에 이르면 범인을 잡기 위해 부모의 애타는 심정 외에 모든 것을
담담하게 눌렀던 감독의 의도가 폭발한다. 그 충격의 에너지는, "엔딩 한 장면을 위해 앞의 모든 장면을 만들었다"고 한 감독의 말을 이해시키는
한편, 절대 절명의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마냥 거기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단숨에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무관심이라는 사회의 통념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의 태도는 웬만해선 전의를 상실하지 않는다. <그놈 목소리>가 불편할 순 있으나 불쾌할 순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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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의 부모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모질게
몰아붙인 설경구와 김남주. 사진으로 먼저 그들을 만나본다.
얼마 전까지 <열혈남아>의 저 슬프고 비열한
시골길에서 휘적휘적 걸어 다녔던 설경구가 9시 뉴스 앵커라니.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한 점 어려움 없이 잘살 것 같던 김남주가 온 얼굴이 퉁퉁
불은 애 엄마라니. <그놈 목소리>는 그렇게 설경구와 김남주에게서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들에게 덧입히는 영화다.
그놈과 맞서야했던 부모의 심정이 되기 위해 두 사람은 영화가 촬영됐던 2006년 여름 내내 지옥을 경험했다. 보통의 부부가 나누는 일상의
대화 대신 아이를 돌려받기 위해 44일간 ‘그놈’과 대화해야했던 몸부림이 그 어떤 부부와도 다른 부부의 연으로 둘을 소통시켰고, 기꺼이 울음과
신음을 토하게 했다.
영화 초반에 전국민을 통쾌하게 하는 클로징 멘트로 인기를 구가하는 앵커 한경배는 슈퍼 파워를 가진 이 사회의 엘리트였으나 영화 후반엔
아이를 찾기 위해 돈 가방을 들고 뛰며 흐느끼는 그저 한 명의 아버지로 변모해간다.
오지선은 세련된 가정주부다. 남편의 방송을 늘 모니터하고, 아들 상우의 과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매일 매일 정성껏 식단을 짜는 어머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불필요해진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울면서 길바닥에 실신할 때까지 어머니 오지선의 감정은 온통 휘몰아친다. 이제껏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 김남주를 본 적이
없었다.
<그놈 목소리> 촬영이 끝난 뒤 어느 때보다 신체 건강지수 최고조에 달해 있는 설경구는 "계속 이 몸으로 지내려고. 가볍고 참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가벼워졌달까?
“숨 쉴 틈 없을 만큼 부모의 심정으로 끝까지 간” <그놈 목소리>지만 설경구 자신은 기분 좋게 변화하고 있다.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벌겋게 달아오른 두 볼, 언제 빗질을 했는지 모르겠는 머리, 어떤 가감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몸으로 김남주는
돌아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뷔작 <아이 러브 유> 이후 6년 만. 최근 자기 몫을 하고 있는 30대 여배우들 사이에서 김남주는 새롭게
기억될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