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재미있는 영화. 위트있는 대사와 경쾌한 연출, 게다가 수다의 전작을 패러디하는 여유까지! 사실 수다 영화는 등장하는 배우들이 항상 비슷해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어떤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정도만이 ‘아는 여자’의 분홍복면씬을 보며 은행강도에 대한 학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기치않게 등장하는 분홍복면 류승룡의 모습은 수다영화의 팬이라면 자지러질만한 폭소 요소. 게다가 한 장면에 같이 등장하는 이지용이 ‘바르게 살자’에서 은행원으로 출연하고 있기 때문에 화면을 반으로 잘라 류승룡 부분만 보여주는 센스도 만점!
개인적으로는 재기발랄하고 경쾌한 연출력이 돋보였던 장면으로 정도만한다스씬을 꼽고 싶다. 경찰들을 오인시키기 위해 맨발에 바지를 걷어붙이고 똑같은 우산을 쓴 인질들이 벌이는 빗 속의 퍼포먼스는 마치 재즈의 스윙처럼 질서정연하다가도 그 속에 돌발적인 움직임이 있고 다시 질서로 돌아간다. 그 모습이 정말로 잘 만든 뮤지컬 속의 군무 같다. 금방이라도 ‘Singing in the rain’에 맞춰 발꿈치를 부딛칠 것만 같은 느낌. 게다가 이어지는 우산속의 정도만한다스씬은 정말 기절할 정도의 유쾌한 경악을 던져준다.
결론적으로 최선을 다해 웃겨주는 이 영화, 최선을 다해 웃고 왔다.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정도만은 그러나 경찰로서 살아갈 때는 그런 삶의 태도가 오히려 삶을 고단하게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하지만 강도가 된 순간 최선을 다하는 정도만의 태도는 빛을 발한다. 그것이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정도만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정도만의 인생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마도 그는 정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에 서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강도를 준비하는 정도만의 모습은 너무나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있어 대단히 즐거워 보인다. 그는 인질강도극의 제작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모든 돌발상황에 대비한 각본을 쓰고 극의 진행을 감독하며 인질강도로 분해 연기한다.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완벽하게 지능적으로 해내는 그는 실은 예술가의 삶에 가까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의 연기는 너무도 훌륭하여 스스로도 강도의 입장에 감정이입해 절망적인 정서를 체화해내며 심지어는 인질들에게조차 스톡홀름 신드롬을 이끌어내 적극 협조하게 한다. 협상조건을 일갈하는 처연하게 단호한 모습에서 그는 이미 강도 정도만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대단원에서 여기까지 온 강도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라고 말하며 그렁그렁한 눈을 하는 정도만과 이어지는 인질강도극의 최후씬은 비록 관객들에게 자지러지는 웃음을 선사했으나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비극적이라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웃을 수 없었다(희극과 비극의 양면을 동시에 연기해내는 정재영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에 새삼 감탄했다. 기립박수가 아깝지 않을 정도.).
아마도 정도만은 이 인질극을 다시 간절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절해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창조자로서의 희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더구나 그렇게도 재능있는 예술가였다면. 혹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가 때로 쓸쓸하지 않을까 마음이 싸아~ 아렸다.
예술가로서, 특히 배우로서의 정도만은 역시나 연기를 하고 있는 정재영 본인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정도만이 최선을 다해 강도를 연기했던 것처럼 정재영 역시 비록 그 삶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연기하는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그 희노애락에 젖을 터이다. 그리고 완벽한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희열을 잊지 못해 어김없이 또다른 영화로 돌아가는 것이겠고. 정도만에 대한 애정인지 정재영에 대한 애정인지 모를 따뜻한 연민의 감정이 혼연일체로 흘러넘쳤다. 아~ 이 얼마나 사랑스런 캐릭터란 말인가?
완벽한 인질강도극을 드라마틱하게 창조해낸 예술가 정도만의 안에 정재영의 모습이! 이 얼마나 사랑스런 캐릭터인지... ;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