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도 <아이언맨>이었다. 지난 4월 30일 개봉해 첫 주 연휴동안 전국 174만명을 돌파한 <아이언맨>이 개봉 9일째인 5월 8일에는 200만명을 넘어선 후, 어제(12일)까지 전국 302만명(배급사집계)을 기록했다. 당초 <아이언맨>의 경쟁작으로 꼽힌 <스피드 레이서>는 2위를 차지했다. 지난 수요일(7일) 예매순위에서는 <스피드레이서>가 초반 1위를 선점했으나, 당일 저녁 부터 다시 <아이언맨>이 1위를 탈환하면서 역전했다.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도 <스피드레이서>가 2위를 차지한 걸 보면, <아이언맨>의 연휴점령은 전세계적인 일인듯. 평일에만 약 10만명을 불러모으고 있는 <아이언맨>이 올해 첫 블록버스터로서 어떤 신기록을 세워놓을지 주목된다.
3위는 개봉 5주째를 맞이한 <테이큰>이 차지했다. 흥행주가로 보면 <테이큰>의 기세는 <스피드레이서>보다 훨씬 세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테이큰>은 지난 주말동안 전국 200만명을 돌파했다.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을 고스란히 견뎌낸 영화치고는 놀라운 성적이다. 4위는 <포비든 킹덤 :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다. 개봉 첫 주 1위를 한 후, 바로 다음 주 박스오피스에서 <아이언맨>에게 밀렸지만 여전히 상위권에 있다. 이번 주에는 <나니어 연대기 :캐스피언의 왕자>가 개봉될 예정. 블록버스터의 3파전이다.
슈퍼히어로라고 다 같은 부류가 아니다. 이쪽 세계에서도 엄연히 신분의 격차란 있는 법. 스파이더 맨이 저소득층이라면, 슈퍼맨은 중산층,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그들 머리 위해서 내려다보는 특권층이다. 이들 특권층들이 소유한 막강한 자금력이야말로 초인 활동의 든든한 파트너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세계 최고의 무기제조 회사를 이끄는 CEO로 발군의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한다. 이 지독한 일벌레는 사업을 하지 않는 여유시간에는 미모의 여성들을 유혹해 침대로 끌어들인다. 작업이 끝나면 매정하게 쫓아내는 난봉꾼으로 인간미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무기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가던 토니는, 게릴라군에 납치되어 무기 제작을 강요당한다. 협조를 하는 척 부지런히 작업에 임하던 토니는 전투형 아머 슈트를 제작해 탈출에 성공한 뒤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흥행 결과에 따라 속편 제작이 급물살을 타겠지만, 영화 자체로만 보면 <아이언맨>은 성공적인 출발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아머 슈트를 입고 히어로의 삶을 선택한 토니의 개과천선의 과정은 깊이는 없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그 성공의 핵심은 크게 욕심을 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다. 액션과 유머, 그리고 참다운 히어로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뇌의 시간도 적당하게 배분했다. 냉혹하고 방탕한 사업가에서 새로운 히어로 탄생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담아낸 <아이언맨>은 토니의 천재적 두뇌 활동과 더불어 돈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동굴에서 만들어지는 촌스러운 아머 슈트가 제작비가 급등함에 따라서 점점 개량되면서 세련된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이언맨>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된다. 특히 아머 슈트와 관련한 장면들은 철저하게 원작 코믹스 팬들을 배려했다. 단순 무식하지만 뛰어난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춘 아머 슈트의 초기 모델, 디자인 샘플에서 등장하는 황금빛 아머 슈트, 그리고 기능과 디자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종 결과물까지 팬들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운 구경거리다.
<아이언맨>은 큰 욕심이 없는 영화다. 토니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 좋은 아머 슈트를 만든 것처럼, 첫 시작은 탄생 비화에 집중하고, 속편에서 화끈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애초 캐스팅 과정에서 불만의 대상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기대 이상으로 토니를 소화했고, 이는 배우의 방탕한 생활과 재활 과정의 현실과 겹치며 플러스 효과를 낸다. <아이언맨>은 <스파이더 맨2> <배트맨 비긴즈>와 같은 드라마와 액션 모두를 아우르는 명작이 되기보다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오락영화로서 즐겁게 봐주는 정도면 만족하는 영화다. 그 목적은 완수했다. 그리고 토니의 인상적인 마지막 대사. 이것은 이제 슈퍼히어로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이상 마스크 뒤에 나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초인들이여, 대중 앞에 당당해져라! 아이언맨은 영악하게 스스로를 이미지 메이킹한다.
tip/ 과거 거친 행동과 약물 남용의 ‘나쁜 남자’로 명성을 떨치다 재기에 성공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방탕한 생활은 실제 배우의 옛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토니 역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한 적역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