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북한 함경도 탄광마을의 세 가족 아버지 용수, 어머니 용화 그리고 열 한 살 아들 준이는 넉넉하지 못한 삶이지만 함께 있어 늘 행복하다.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고 폐결핵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간단한 감기약조차 구할 수 없는 북한의 형편에, 아버지 용수는 중국 행을 결심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 끝에 중국에 도착한 용수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지만, 불법 현장이 발각되면서 모든 돈을 잃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간단한 인터뷰만 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용수는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과 완전히 헤어지는 길이 될 줄은 모른 채 …
한편 용수가 떠난 뒤, 2달여가 지나자 용화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마침내 용화는 세상을 떠난다.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열 한 살 준이,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한 용수는 브로커를 통해 준이의 행방을 알게 되고, 다시금 헤어졌던 준이와 용수의 불가능해 보였던 만남이 시도된다! 하지만, 아버지 용수와 아들 준이, 그들의 간절한 약속은 안타까운 엇갈림으로 이어지는데
차인표는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 출연 제의에 무려 네번이나 퇴짜를 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북한의 현실을 다룬다는 점과 탈북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민감한 소재의 영화에서 혼자서 극을 이끌어가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차인표는 우스개 소리로 김태균 감독의 전작들을 나열하며 '화산고' '백만장자의 첫사랑' '늑대의 유혹' 등 꽃미남들과 작업할 때는 불러주지도 않더니 힘든 영화에 왜 하필 자기를 고집한거냐며 투덜대기도 했다.
기자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워낙 소리소문없이 제작된 영화인지라 북한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겠거니 했었던 것. 그리고 거절하는 작품마다 대박 흥행을 기록했으며 선택한 작품들은 쪽박을 찼던 불운의 배우 차인표에 대한 선입견 탓에 이번 영화 역시 '닥터k' '아이언팜' '보리울의 여름' '목포는 항구다' '한반도'와 다를 바 없겠거니 하는 저평가가 은연중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제작발표회장에서 처음 접한 영화 '크로싱'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기자들은 하나같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놈놈놈'을 잇는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았을 정도. (심지어 난 그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울었다..)
2002년 3월 베이징주재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논란을 야기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따랐던 게 사실. 하지만 뚜껑을 연 영화 '크로싱'에는 정치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북한 함경남도에 사는 전직 축구선수이자 탄광에서 일하는 평범한 가장 김용수(차인표), 그의 아내 서용화(서영화) 그리고 외아들 준이(신명철)가 주축이 된 북한의 가정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알지만 외면했던 북한의 힘겨운 현실까지..
나라에서 훈장까지 받은 함경도 대표 축구선수 출신 김용수 역의 차인표는 이 역할을 위해 체중감량은 물론 근육까지 뺐다고 했다. 먹을 게 없어 끼니 거르는 게 다반사인 북한 주민치곤 지나치게 건장한 체력과 웨이트로 다져진 잘 부풀어오른(?) 근육이 문제였던 것.
혹독한 체중감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체격이 좋아보이는 차인표가 덜 눈에 띈 것은 아마도 극중 축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설정 덕분일 듯.
반면 깡 마른 준이역의 신명철은 실제로 충북 영동군에 사는 시골아이. 까만 피부와 깡 마른 몸이 실제 북한 아이처럼 리얼하기 그지없는데 탈북 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몽골 사막을 헤매는 장면에서 신명철은 몽골로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준이가 되기 위해서 신명철은 몽골에서 진행된 탈북여정 촬영에서도 계속해서 굶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지독한 금식을 한 것. 얼굴이 조금이라도 부어있으면 눈물을 흘렸을만큼 극에 완벽히 몰입,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하여튼 지독한 부자지간이다..
그들은 그렇게 완벽하게 탈북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언론시사회에서 차인표는 "왜 이렇게 미안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 관객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찍고 봐달라고 홍보하는 느낌이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어 "아무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안 계신데 말이다. 제가 미안한 감정 가졌던 것이 오해였고, 이미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계셨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좋겠다. 흥행을 넘어, 북한 사람들의 실상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확실히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영화'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외면만 하고 있을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무관심하게 귓등으로 흘려버리기엔 한 민족의 언어를 쓰는 그들의 비명이 너무나 잘 들린다..
모른 척 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실제로 영화 '크로싱'에는 탈북자들이 참여를 해 눈길을 끈다. 4년여간의 긴 제작기간에 단 한번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북송될까봐 탈북자들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렸던 것.
언론시사 후 김태균 감독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거다. 베이징주재 스페인대사관 진입하는 장면에서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씬을 찍는데 한 탈북자가 촬영을 중단시키며 김 감독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렇게 순순히 안잡혀간다. 손가락이라도 깨물고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감독님은 절대 모른다. 저 사람들이 무슨 심정인지.."
우린 절대 모른다. 연출한 김태균 감독도 그리고 탈북민을 연기했던 차인표도.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인지.. 얼마나 절박한지..
